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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 수요일]

20200506()

박준 야고보 신부

 

 

독서: 사도 12,2413,5/ 복음: 요한 12,44-50

 따뜻한 빛.jpg

 

 

 

찬미예수님! 오늘은 부활 제 4주간 수요일입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구원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습니다. 다소 추상적인 이 개념이 오늘날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면서 쓰게 되었는데요. 처음 주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지도 교수 신부님께서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구원은 십원에서 일원을 뺀 것이다....” 실없는 농담인 듯 하지만 그만큼 이 개념이 오늘날 내 삶에 와 닿지 않는, 뜬구름 잡는 개념으로 남아있음을 지적하신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심판자가 아니라 구원자로서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구원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구원이란 우리가 죽어서 하느님 나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지상 생활에서 체험하는 구원도 있습니다. 내가 큰 사랑을 받고 있음을 체험할 때, 특별히 그것이 어떠한 조건에 따른 것이 아니라 나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때 우리는 구원을 체험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긍정해 주시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나의 부족한 점을 평가하고 단죄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따뜻한 빛을 비추어 주시면서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보며 문득 어릴 때 들었던 이솝 우화가 떠올랐습니다. ‘해님과 바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힘이 더 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바람은 해님에게 내기를 제안합니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먼저 벗기는 쪽이 이기는 내기였습니다. 먼저 바람이 세차게 불어 외투를 벗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그네는 오히려 외투를 더 단단히 여밉니다. 다음으로 해님은 볕을 내리쬐어줍니다. 몸이 따뜻해진 나그네는 외투를 벗었고 해님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우화입니다. 특별히 긍정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금지하고, 벌을 주고, 통제하는 것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 수 없습니다. 또한 같은 말이라도 부정문이 아닌 긍정문으로 할 때에 그것은 더욱 잘 받아들여집니다. 저에게 있어서 예수님도 해님 같은 분이십니다. ‘안돼라는 말 보다는 괜찮다라고 긍정해 주시는 분이시며, 그렇게 우리가 스스로 변화하고 당신의 빛 아래 있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저는 이게 잘 안됩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자주 남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단죄하게 됩니다. 혹은 내 기준과 다른 길로 가고 있는 사람을 교정하고 통제하려고 합니다. 심한 경우 상대방이 한 말이나 행동 뒤에 어떤 다른 뜻이 숨어있을 것이라고 혼자 판단하고 그 사람을 미워하기 까지 합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믿어 주십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조건들만으로 미리 평가하고 단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들이 그 자체로 본래 선하고 귀한 존재임을 믿고 그것이 잘 드러나도록 그저 비추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 빛 아래서 저 또한 남을 더 믿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조건 없는 사랑 아래서 따뜻한 하루가 되시길 은총으로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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